자유기고
조선시대에도 연쇄살인사건이 있었다?
서울 개운중학교 3학년 천다영 기자  |  cjsekdud06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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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승인 2017.11.08  16: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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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에 일어난 16가지 잔혹한 살인사건을 다룹니다. 책을 보다보면 조선시대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살피게 되는데요. 특히 조선시대 하층민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모습은 계급사회의 슬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아래 다루는 내용은 ‘조선 최대 권력 스캔들 - 부총리 유희서 살인사건’에 대한 요약입니다.

 

감춰진 역사 속 살인사건
때는 선조 36년(1603)이었습니다. 한양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인들의 시체들이 발견됐는데 그 시체들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해 보기가 끔찍했죠. 사망한 여성들은 몇 달 전부터 실종된 평민층 부녀자와 기생들이었습니다. 당시 포도대장 ‘변양걸’이 사건 해결에 집중했으나 범인이 남긴 발자국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한 달 후 다시 여인의 시체가 발견 되는데 ‘애생’이라는 당시 최고의 기생이었습니다. 인기 많던 애생의 시체가 발견되자 그녀를 사랑하던 많은 유생들과 관리들이 범인을 잡으라고 들볶아서 일이 커지게 됩니다.

 

얼마 후에는 승정원에서 왕명을 출납하는 역할을 하는 ‘유희서’가 살해당하는데 선조가 나서서 직접 범인을 잡으라고 왕명을 내립니다. 처음엔 앞의 여성 연쇄살인 사건과 유희서 사건은 전혀 연관 없는 사건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희서의 아들이 유희서와 애생은 연인 관계였고, 유희서가 범인을 찾고 있었다는 증언을 하여 같은 사건으로 인식하고 조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조사 끝에 용의자 네 명이 체포되었지만 이 중 두 명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진범을 찾는 건 어려워졌습니다. 변양걸은 영의정 ‘이덕형’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그는 고민 끝에 오성부원군 ‘이항복’을 찾아가 보라고 합니다. 야사(野史)에서 이항복은 귀신과 이야기하는 인물로 많이 나옵니다. 변양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항복을 찾아가 자초지정을 얘기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항복은 말없이 있더니 종이를 펴고는 의식을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거칠게 글을 적었습니다.

[임해군]

임해군은 선조의 큰아들이었습니다. 임해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의 포로로 잡혀가 고생을 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울폭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남달리 애정을 쏟았으나 부녀자를 강간하거나 자신의 아랫사람을 죽이는 등 적지 않은 비행을 저질러, 나이가 가장 많은 아들이면서도 세자에 책봉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변양걸은 임해군의 주위를 탐문 수색 했고 그 결과 임해군의 하인들이 한 여인의 시신을 매장하는 현장을 잡게 됩니다. 변양걸은 그들을 심문해 임해군이 하녀를 고문해 죽였고, 그의 사주로 시신을 파묻으려 했다는 진술을 받습니다. 이에 변양걸은 공식적으로 사건의 결과를 발표 했고 많은 대신들 역시 임해군을 죽이고 민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이 아들 임해군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선조였죠. 그래서 오히려 거짓을 얘기 한다며 상소한 대신들을 귀향 보내거나 파직시켰습니다. 변양걸도 심문을 당하게 됩니다.

 

얼마 후, 선조는 가뭄에 대한 구언을 신하들에게 청합니다. 구언이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임금이 신하의 바른 말을 구하는 것으로 이때 신하가 어떤 직언을 해도 처벌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덕형과 이항복은 구언을 기회로 삼아 유희서 살인사건 결말에 대한 부당함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변양걸에 대한 사면을 임금께 청하고, 임해군의 잔인한 살인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의 원한이 나라에 가뭄을 불러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대신들도 입을 다문 죄가 있다며 줄줄이 파직을 청했습니다. 선조는 화가 나고 어쩔 줄 몰라했지만 신하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변양걸은 몇 년 후 다시 복귀합니다.

 

사건의 범인 임해군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으나 결국 하늘이 내린 벌을 받게 됩니다. 임해군은 광해군이 즉위하자 역모를 일으키려다 귀향을 가고 그곳에서 사약을 받게 되죠. 사실 조선 시대에 양반들이 평민층이 부녀자를 윤간하거나 죽이는 일은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벌건 대낮에 하인들을 죽이는 일도 있었죠. 이 사건이 커진 건 왕자였던 임해군이 조선의 공신인 유희서를 죽인 일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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