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제10회 전 국민 잡지읽기 수기공모전 장려상고래가 그랬어, 그래서 정말 고마웠어
신유미 기자  |  myb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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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승인 2018.02.19  10: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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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잡지협회는 잡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고 전 국민의 독서생활화 및 잡지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매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잡지읽기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5월 8일부터 9월 18일까지 접수를 받았으며, 일반부 부문에서 15명, 청소년 부문에서 16명이 수상했다. 이 중 청소년 부문 수상작을 연재한다.



- 전북 지평선고등학교 2학년 이일주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습관처럼 『씨네21』과 『페이퍼』를 훑고, 『월간 사진』을 들춰본다. 그러려고 간 건 아니었는데. 시계는 야속하지만 정직하게, 분침이 벌써 한 바퀴를 돌았다고 알린다. 원래의 목적에 벗어난 채로 어김없이 잡지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잡지가 책보다도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때는 잡지보다 더 사랑받는 책에 대해 시기어린 마음을 표출하기도 했었으니, 새로운 정보들에 반응하고 참을성이 없는 불친절한 독자에게 잡지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선물과 다름없었다.
 

많은 선물들 중에 하나를 꼽기란 적지 않은 고민이 따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함께해온 인연이 지금까지 진득하게 이어져온 『고래가 그랬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지금 보면 이름이 참 수상한 까닭에 또래들이 해당 잡지에 엽서를 보낼 때마다 이름에 대한 언급이 빠지는 일은 드물었는데 당시에는 그 희한한 이름보다도 알찬 내용에 푹 빠져있었다. 영화, 책 소개며 다양한 만화, 또래들이 보낸 엽서, 네덜란드 생활기까지 손가락 반 뼘 두께의 책에서 그 이상의 내용을 맛볼 수 있는 즐거움에, 『고래가 그랬어』가 황토색 봉투 속에 고이 담겨 올 때면 운수좋은 날에 뜻밖의 금전의 이득을 본 김첨지보다도 마음이 ‘푼푼해졌다’.
 

『고래가 그랬어』에 처음으로 엽서를 보냈었다. 엽서는 한 시간 정성의 결과물이자, 우체통에 넣고 잡지가 다시 올 때까지 이주일의 기다림, 그러나 엽서가 실리고서 그 페이지를 지나칠 모두에게는 3초의 응시대상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무언가의 일부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괜스레 특별한 기분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었다. 특별한 감정은 곧 메일로 이어졌고 ‘수신자:고그’ 발행인의 메일에 ‘고래가 그랬어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문장들 속에 감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감사하다’는 말로 첫 운을 뗀 답장에는,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겸손한 한 문장이 다른 내용들을 압도한 채 쓰여 있었다.
 

잡지의 겸손한 마음가짐 말고도, 메일과 엽서는 좋아하는 대상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 상호간의 소통을 이루는 창구 역할로 작용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는 잡지를 통한 정보의 습득이 또 다른 2차적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잡지가 간접적으로 능동적 역할을 해낸다는 점 역시 경험으로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수화를 통해서였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의 수화에 대한 상식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 나오는 손짓 몇 개 정도였다. 그것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모두 희끄무레 하게 처리 되어 보일 뿐, 정확히 따라 할 수 있는 거라곤 ‘사랑’하나 뿐이었다. 생소한 언어로 자리 잡아 있던 수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래가 그랬어』의 ‘쉿, 손으로 말해요!’ 덕분이다. 보통 초등학생 친구들이 모델로 나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화를 알려주곤 하는데 처음 구독했을 때는 만화에 집중하느라 수화 코너는 쓱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 우연히 손으로 전달하는 말에 흥미를 발견하고 나서야 지금까지 받아둔 지난호들을 몰아보며 사진 속에 정지된 언어를, 움직이는 손짓으로 끌어왔다. 몇 번이고 손으로 익혔던 단어들도 지금은 머릿속을 많이 떠나가 버렸지만 처음에 보았던 문장은, 몇 번이고 연습했던 기억을 잊지 않아주었다. 이런 문장이었다. ‘자꾸 잠이 와요, 하품을 10번(많이)하게 돼요.’
 

학교에서 자유주제로 직접 강연하는 시간이 있었다. 도서관 안에서 모두가 강연 주제를 골몰하던 중, 문득 수화가 떠올랐다. 『고래가 그랬어』를 펼쳐 ‘쉿, 손으로 말해요!’를 재빠르게 찾은 뒤, 사진 속 친구를 따라 20여 분간 수화를 연습했다. 주제는 ‘떡볶이’. 강연 순서가 나를 가리키자 앞으로 나와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두 손을 이렇게 바깥으로 꺼내주세요.” 무신경하면서도 어리둥절한 수많은 손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한 번 따라 해볼까요?” 가장 앞에 있는 두 손이 먼저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며 또 다른 움직임들을 재촉했다. ‘학교’ (손짓). ‘끝나다’ (손짓). 그리고 ‘떡볶이’ (손짓). ‘맛있다’ (손짓). 네다섯 개 남짓의 손짓을 알리자 강연 시간 동안 바쁘게 일한 귀에 비해 소외되었던 손들이 그제야 활기차게 움직이며 공간을 채웠다. 제 각기 다른 모양을 자랑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같았다. ‘학교 끝나고 먹는 떡볶이는 꿀맛이에요.’
 

처음 수화를 해보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양손을 반짝거리는 손짓으로 박수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모두가 열심히 수화에 참여해 주었다. 태어나서부터 당연히 귀의 청각에 의존해 대화를 통한 상호간의 소통을 이뤄나가는 우리이지만, 그 대화가 손을 통해 뻗어져 나오는 세계도 있음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으나 나는 ‘수화’를 접하면서 분명 새로운 세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나, 한 때 손과 머리를 스쳐지나간 수화 동작들을 많이 잊어버린 지금이나 수화를 잘 모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꼭 알지 않아도, 언제든지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심’이 다른 지점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수화동작을 알고 있으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작은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더 확산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책장 한 구석에는 국적도 주제도 다양한 잡지들 한 무더기가 꽂혀있고 그 속에는 작은 역사가 스며들어있다. 『개똥이네 놀이터』 속 수많은 동무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 여행과 시와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로 함축된 감성이 가득한 『페이퍼』를 품고 살던 중학교 때, 동시대의 기록과 과거의 기억을 펼쳐보기 위해 『키노』와 『씨네21』을 집어 드는 지금. 손때 묻은 잡지들은 그 자리에 꽂힌 채 지나온 ‘나’들을 한 페이지 씩 담아두었다.
 

나의 역사를 겹겹이 쌓아두고 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표해야 할 잡지들은 여럿이지만 오늘은, 수화에 대한 관심의 씨앗을 심어준 이후로 조금씩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 있는 또 다른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래가 그랬어』에게 대표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할까 한다. ‘고래가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고래가 그랬던’ 덕분이었다고, 그래서 고마웠던 마음을 고래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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