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계소통, 소담이와 함께하는 우리나라와 통하는 여행
경기도 화성, 광주
부산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금소담 기자  |  kumsodam@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86호]
승인 2018.08.08  16:38:2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8월 15일은 광복절이죠. 많은 분들이 광복절은 알지만 8월 14일이 ‘세계 위안부의 날’인 것은 잘 모를 거예요. 전국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담긴 곳들이 많지만, 일제의 잔혹함을 가장 와 닿게 보여주는 곳인 동시에 다른 곳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제가 스코필드 장학생 활동을 하며 지난여름 캠프에서 친구들과 함께 갔던 곳입니다.


 

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국사 시간에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 들어보았을 거예요. 제암리 학살사건이란 3·1운동 때 일본군이 수원(지금의 화성시)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사건입니다.

   
▲ (사진_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홈페이지)

일본군은 만세운동이 일어났었던 제암리에 와서 마을사람 약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한 부인이 어린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아기를 창밖으로 내놓았는데, 그 아기마저 잔혹하게 찔러 죽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이 사건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교회당을 비롯한 마을에 불을 질렀고, 일본이 숨기려 했던 이 사건은 선교사 스코필드가 현장을 사진에 담아 보고서를 작성하고 미국으로 보내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1982년 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하였고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는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를 알려주는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유물은 바로 약간 녹아버린 단추입니다.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을 정말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 외에도 제2전시관을 통해 ‘학살, 끝나지 않은 역사’라는 주제로 전 세계의 학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부터 시작하여 중국 난징대학살 등 잘 알려진, 규모가 큰 학살과 더불어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학살들까지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해 알고, 비극적인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누구나 한번쯤은 ‘나눔의 집’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 거예요. 몇 년 전부터 이슈화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계신 곳이에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대부분이 가족이 없으니 지난 1992년에 나눔의 집이 생겨났다고 해요.

   
▲ (사진_나눔의 집 홈페이지)

나눔의 집의 역사관은 많은 사람이 직접 방문하여 ‘위안부’에 대해서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여기에 다녀왔는데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후를 비교하면 정말 큰 변화가 생겨난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에도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고 생각했고, 잘 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다녀오고 나서야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직접 마주한 참혹한 현실은 그 어떤 영화나 책 보다 많은 걸 알려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날 혼자서 약속을 하나 했어요. 일제 필기구를 쓰지 말자. 저렇게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도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는 뻔뻔함은 아마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계속 일본의 물건을 사고, 일본의 경제를 살려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혼자 약속한 일제 필기구 불매를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도 ‘제트스트림’ 펜을 추천해 줄 정도로 제트스트림의 광팬이었는데, 그날 이후부터는 제트스트림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함께 ‘위안부’ 할머님들을 도와드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직접 디자인을 하고, 외부에 제작을 맡겨 노트, 거울, 초콜릿, 달고나, 스티커를 마련했어요. 학교 친구들에게 직접 팔고, 그 돈을 모아 나눔의 집에 기부했는데 그 모든 일을 하게 한 원동력은 나눔의 집으로부터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중에서는 ‘여행 기사가 왜 이렇게 딱딱하고 사회적이지?’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모두가 다릅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서 저와 같은 곳을 간다고 해도 당연히 같은 생각을, 같은 감정을 느끼진 않을 거예요. 다만, 우리가 꼭 알고, 잊지 않아야 할 역사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가서 이렇게 느꼈으니 다음번엔 여러분이 직접 가서 느낀 점들을 나누어 주세요. 함께해 주세요.

 


 인터뷰 
이 두 군데를 모두 같이 갔던 친구의 인터뷰를 담아 보았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채드윅국제학교 10학년에 재학 중인 김선입니다. 국제학교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다녔고, 그 전에는 한국 공립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다녀와서 느낀 점이 있다면?
작년에 방문했는데 제암리에서 일어난 일제의 만행이 국제학교 8학년 교육과정에 실리지 않았던 터라 사실 조금은 생소했습니다.
그곳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파렴치한 일제의 횡포 속에서도 굳건하게 독립을 주장했던 선조들의 용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본분을 뛰어넘어 제암리 사건을 전 세계에 보도한 스코필드 박사님의 세계시민의식입니다.


나눔의 집에 다녀오고 느낀 점 및 새로 배운 점은요?
‘위안부’는 현재까지 대두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제의 강제 ‘위안부’ 구축과 성폭행이 아직까지 사회에 큰 고민거리로 남은 것은 상당히 언짢습니다.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가 필요한데 그 마음의 구멍을 물질적으로 메우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나눔의 집에서 손이 떨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뵙고 난 후 마음의 불이 더욱 드세진 것 같습니다.


두 곳에 다녀오고 난 후 변화가 있다면?
제암리 기념관 방문과 나눔의 집 방문은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선조들 안에서 타오르는 독립의 불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18년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세계가 통합되고 있는 21세기에 우리는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학원에 가서 무작정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제는 다른 호와 다르게 조금 많이 무거웠지요. 다음 9월에는 경상북도 포항과 경주의 여행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작권자 © 밥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밥매거진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신길로250, 3층 (우: 07312)  |  대표전화 : 02-837-0424  |  팩스 : 02-837-041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영등포,라00367   |  발행인 : 최명칠  
Copyright 2011 밥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ybop@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