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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식개선 수필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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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승인 2018.10.04  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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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은 지난 여름, ‘일상 속의 장애인’을 주제로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 등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습니다. 이 중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이영순 씨의 「기적」을 밥매거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적

어느 날부터 티브이를 틀면 뉴스에는 아주 작은 수화통역사가 함께 나오고 있었다. 통역사 보다 더 작은 손가락은 동그랗고 차가운 파란 배경 속에서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춤같이 화려한 그것은 선천적 청각언어장애인인 우리 부모님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부모님께서는 밥상을 펴고 오빠와 나를 불러 앉히셨다. 책 한 권을 사 오신 것이다. 책을 펴보니 글자 옆에 수화만이 있었다.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부모님께는 뜻 설명부터가 우선이었다. 오빠는 연습장을 가져와 쉬운 음식부터 그려나갔다. 배추를 그렸고, 오이를 그렸다.
“엄마 따라 해 보세요 배~추!”
“매~수!” “오~이!” “고~이!”
어머니는 다행히도 2음절 정도는 입모양을 보고 비슷하게 소리를 낼 줄 아셨다. 선천적 장애로 듣고 말하면서 글자를 익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배추’를 ‘추배’로, ‘오이’를 ‘이오’로 쓰셨다. 그것마저도 내일이 되면 까먹기 일쑤였다.
그 외 ‘즐겁다’ ‘싫다’ 이런 것들은 표정으로 보일 수 있어 설명이 쉬웠지만 보여 줄 수 없는 감정 ‘괜찮습니다’와 같은 수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나의 서툰 연극이 꼭 필요했다. 나는 어머니의 발을 살짝 밟고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후 노트를 가져와 [미안합니다]라고 적어 보여드렸다. 다행히 부모님은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렇게 제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엄마는 저한테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밟힌 발이 안 아프니까요. 알았죠? 이제 이해하신 것 보여주세요.”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부모님께서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발만 밟으셨고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볼 뿐이었다. 내 설명은 다시 시작되었다. 몸짓, 표정, 그림으로도 참 어려웠다. 반복되는 설명에 지쳐 짜증도 내었다. 글의 뜻을 듣고 나서 더욱 고민에 빠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면 혹시 나 때문에 더 큰 혼란을 겪게 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답답함에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소리가 빠진 내 몸을 상상했다. 그것은 부모님에겐 그저 막막한 퀴즈였던 것이었다. 맞췄는지 못 맞췄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이상한 퀴즈. 혹여 부모님께서 잘 이해하셨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틀린 것이 돼버린다. 그래서 이상한 퀴즈인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전히 수화책을 가져와 어려운 글자를 물으셨다.
[정직하다] “몰라요. 설명 못 해요.”
[기적] “어려워요. 몰라도 돼요.”
그렇게 나는 점점 수화책을 덮어갔다.
대학교를 가서는 기숙사 생활로 집에 자주 못 가게 되면서 어머니와 문자를 자주 주고받았다. [밥많이먹] [몸위험조심요] [공부많열심] 성인이 돼서도 못난 나는 어머니의 서툰 문자를 친구들이 볼까봐 숨겨서 답장을 했다. [네 알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갈 때면 여전히 어머니는 삐뚤빼뚤한 글자가 꽉 찬 공책을 가져오셨다.
[도포 달다. 많이 먹어요]
“여기 틀렸어요. 도포가 아니고 포도!”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눈으로만 글자를 외우는 것은 어머니에겐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포도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으셨고 자꾸 틀리는 자신을 바보라고 즐거운 듯이 자책하셨다.
“엄마 바보 아니에요. 어려운 거 맞아요. 모두가 틀리는 거예요.”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우리 남매를 미소로 키우셨다. 세월이 참 빠르게도 흘러갔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 괜찮아진다고들 하지만 아마 어머니의 미소 뒤에 숨어 있을 마음속 답답함은 세월 따라 오히려 쌓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미소를 보는 것이 종종 힘들다.
“따라란~”
영상통화 수락. 환하게 미소 띤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와 나는 간단한 일상 수화를 주고받는다.
“엄마 아침밥 드셨어요?”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는 모습을 하며 입에 여러 번 댄다.
“먹었다, 너도 빨리 밥 먹어!”
화면 속 어머니는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이상한 소리를 크게 내며 인상을 쓰셨다. 이 모습은 아마 건청인이 보기에는 화가 난 것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는 단지 밥을 걸렀을까 봐 걱정이 되신 것 뿐, 목소리 조절이 안 되는 것뿐인데 말이다.
“네 먹었어요. 맛있는 거 많아요.”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들을 비췄고 어머니는 엄지를 들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약은 드셨어요?”
어머니는 20여년 가까이 위식도역류증을 앓고 있다. 어머니께 알약 크기를 손가락 한마디로 표현하며 입에 여러 번 넣는 시늉을 했다.
“먹었어. 참! 약이 몇 개 없네?”
“약 없어요? 그럼 이틀 자고 제가 갈게요. 병원에 저랑 둘이 가요”
“이 약을 먹었더니 목이 마르고 아파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눈을 꼭 감고 침을 삼키며 목이 마른 표정을 열심히 지으셨다. 의사는 그런 어머니의 몸짓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
“저번에 이 약 안 빼고 드셨어요?! 목마름증이 있으시면 이 약을 빼고 드셔요!!저번에도 설명해 드렸는데요!”
의사는 어머니가 여분으로 가져온 약을 만지작거리며 목소리 크기만을 한껏 높였다. 안타깝게도 그 큰소리는 어머니에게 아무소용이 없는 소리다. 나는 지켜보다가 다섯 개의 알약 중에서 해당 되는 약을 하나 골라 손가락으로 집어서 버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해당되는 알약에 간단하게 X표시를 했다. 금방 끝난 내 설명에 어머니는 이제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어머니가 저번에 못 알아들으시고 약을 그대로 드셨어요. 이번부터는 빼고 처방해주세요”
“네, 저번에는 약을 이미 드시던 중에 찾아오신 거라서….이 약을 빼고 드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안 빼고 드셨군요?”
의사 선생님은 수화를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알아듣지 못하고 목이 마르는 약을 계속 드신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며칠 전 내 어머니가 오늘처럼 의사의 들리지 않는 얼굴만 보고 그냥 가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혔다.
보통 건청인들은 농아인을 만날 때면 목소리만을 크게 높인다. 그보다는 그저 작은 몸짓이나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건청인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20여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도 알아듣지 못해 재방문 했음에도 의사는 자신의 설명법에 조금의 변화도 주지 않았던 것처럼 대부분 건청인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농아인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장애인치과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농아인이세요.”
“예?”
“농아인, 청각언어장애, 그러니까 듣는 것도 말씀하시는 것도 못 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어머니 뒤로 누우실게요~ 한번 꽉 깨물어보시겠어요? 깨물어보세요! 꽉요! 아니 꽉!”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나는 소리가 커지는 것을 듣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못 들으셔요.”
나는 엄마 눈을 마주치며 내 입에 힘을 줘 꽉 다무는 걸 보여드렸다. 그날도 나는 오늘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장애인진료센터인데도 어머니 혼자서의 진료는 여전히 힘들었다. 어려운 수화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간단한 보디랭귀지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오래된 위식도역류증. 20년 넘게 고쳐지지 않는 그 속 쓰림은 어머니의 일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 씁쓸했다.
내가 바라는 기적은 큰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다. 내 어머니가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을 하는 것. 수화를 모른다고 해도 보디랭귀지를 해주는 것처럼 농아인에 있어 아주 작은 배려가 있는 그런 기적 말이다.
오랜만에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기로 했다. 소리를 끈 뉴스 화면에는 여전히 아나운서가 말하는 속도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있었다. 어머니는 부럽다고 했다. 벌써 30분째 내용을 모르는 뉴스에 집중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수화책을 폈다. 예전에 설명이 어려워 포기했던, 몰라도 된다고 했던 ‘기적’ 이라는 단어를 다시 가르쳐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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